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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쇠라도 녹일 삼복 더위’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날씨입니다. 그러나 내 책상위에 놓여 있는 철제필통은 전혀 덥지 않나 봅니다. 만져보면 오히려 차갑습니다. 이 여름 속에서 더위에 지치지 않는 철을 생각함은 한가지 피서법이 아닌가 합니다.
철은 몇 천년 전부터 나와 내 할아버님과 또 나의 조상님들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렇듯 오랜 지인(知人) 사이인 철을 이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어색한 것 같아 앞으로는 ‘그’라 부르겠습니다. 내가 대하는 그는 항상 냉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도 그는 초조해 하거나 당황하지 않습니다. 그는 무겁습니다. 어떠한 일에도 그는 경박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침묵으로써 신중을 취하는 그의 태도는 ‘이리 우-, 저리 우-‘하는 중심이 없어진 대중사회가 지니고 있는 병폐를 없앨 수 있는 해결안이 아닐까요? 그는 강합니다. 인간의 연약한 골격을 보호해 주는 강한 존재입니다. 나약한 인간에게서 찾을 수 없는 강한 힘을 그는 지니고 있습니다. 창과 방패로써 우리 조상들을 야수로부터 지켜주었습니다. 그는 시련, 용광로의 시련을 겪고 난 후에야 이 세상에 나올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시련 중에서, 우리가 여태껏 겪어 왔던 시련 중에서 용광로의 시련과 비길 수 있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는 수 천도가 넘는 열의 시련을 이겨낸 승리자 입니다. 그는 어느 누구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는 부귀빈천에 상관없이,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그이 모습 그대로를 내보여 줍니다. 그는 가난한 자의 책상이 되기도 하며 사장님의 자동차가 되기도 합니다. 그에게서는 승리자의 교만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비굴하게 강자에게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강자에게나 약자에게나 그이 햇살을 골고루 뿌려 줍니다. 그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흔히 강자에게는 결여되어 있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혹자는 그가 항상 꽉 막혀 있다고들 하나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용광로에서의 그는 어느 모 |
양이든지 이루어 냅니다. 가는 철사에서부터 두꺼운 철판, 커다란 유조선,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
비행선도 그는 어떤 것이라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는 언뜻 보기엔 굳어져 버린 것 같지만 어느 형태라도 전환이
가능한 유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전장에서 빗발치는 총탄을 막아냅니다. 우주 공간에서의 죽음보다도 더 고요한 침묵을 견뎌 내며, 폭풍우에도, 무수한 시간의 화살에도 끄덕 없이 서 있습니다. 그는 지조가 있습니다. 아름답기는 하나 한 때뿐인 꽃보다도, 깨끗한 것 같으나 시시각각 검어지는 구름보다도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이 모든 성품이 마치 군자를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으십니까? 그는 현대의 사군자라 일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도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고여있는 물이 썩게 되듯이 그도 우리와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와 같이 숨쉬지 않으면 녹이 슬고 맙니다. 강함도, 유연함도, 군자의 성품도 모두 잃고 초라한 몰골만이 남게 됩니다. 우리와 함께 있어야만 그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도 그가 있어야만 현재의 문명 사회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 태양이 떠오르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늘과 실’ 사이 보다는 ‘인간과 철’ 사이가 더 가까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철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상기억합금이라든지 초경량화를 위한 고장력강 등이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천년 동안 인류와 같이 살아온 철! 우리 모두의 마음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철! 철은 이미 우리가 의식할 수 없을만큼 우리 생활속에 용해되어 우리 어린날의 기억속에 녹아 있습니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죽게 될 그날까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을 나의 친구 나의 동반자 철이여! 나에게 우리에게 아름다운 미래를 갖다 줄 그대, 인류의 동반자 철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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